이재명(앞줄 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월 15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 차려진 지역화폐·골목상권살리기 운동본부 농성 현장을 방문해 발언을 하고 있다. /매경DB [김세형 칼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민 1인당 30만~50만원씩 재난금을 나눠줘서 표(票)를 얻으려는 공약 1호를 접은 대신, 지역화폐 발행액을 6조원에서 무려 30조원으로 늘리는 예산 지원방안을 여당의 힘으로 단독처리해 대통령선거에서 선심을 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국민 세금으로 무려 6053억원을 넣게 되는데 지자체도 똑같이 넣을 경우 1조2000억원(할인율 4% 예상)을 뿌리는 돈선거에 기여한다.지역화폐란 무엇인가?'지자체가 발행한 돈'으로서 그 지역 내에서만 한정된 시일 내에 지출하되 주로 식당, 동네 슈퍼, 소상공인 가게 등에서 쓴다. 대개 10만원짜리 지역화폐는 9만원에 살 수 있도록 10% 할인해 주며 정부 보조금 8%+지자체 보조금 2%로 할인비용을 부담한다.정부 지자체가 마중물(10% 할인)을 대서 지역소상공인이 장사가 되게 하고 서민들 가계에도 보탬이 된다는 코뮌(commune) 논리다. 부(富)의 소비를 돈 많은 대도시로 뺏기지 않고 지방의 지자체에 돌게 하자는 게 지역화폐 도입의 포인트다. 　미국의 포린폴리시라는 잡지는 경기도 이재명 시장이 지역화폐를 동원해 지역 업체의 월 매출액이 18% 증가하고 소상공인 매출이 56% 늘었다며 창의적인 행정으로 칭찬하는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지역화폐를 발행한 지자체가 잘 된다니까 부산에선 동백전이란 지역화폐 플랫폼을 택시호출과 연계한다는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기사가 떴다. 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살리는 마법처럼 소개되자 지역화폐 발행은 2018년까지 전국 66곳(3714억원)이던 것이 2019년 177곳(3조2000억원), 2020년 229곳(9조원), 그리고 올해 2021년에는 243개 지자체 가운데 232곳에서 무려 21조원의 발행액을 기록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정도라면 전국이 지역화폐 만세!다.서울사랑상품권, 인천e음, 여민전(세종) 같은 것들이다. 아까 지역화폐 발행에 정부 보조가 대개 8%라 했는데 이 돈을 대느라 국고 지원으로 2019년 6699억원, 2020년 1조2522억원이 나갔다. 이렇게 흥청대던 지역화폐 불꽃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의 기재부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2022년도에는 지역화폐 발행은 6조원으로 줄이고 정부 보조도 2403억원으로 77.2%를 대폭 삭감하겠다고 얼음폭탄을 던졌다.　그랬더니 이재명 후보는 지역화폐운동본부 관계자들과 면담(11월 15일)에서 "행정고시 볼 때 책에서 배운 것 말고 현장을 체감해 보시면 이와 같은 만행에 가까운 예산 편성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후보는 "따뜻한 안방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엄혹한 서민 삶도 직접 체험해 보시라. 지역화폐가 경제를 순환시키는 게 분명한데 왜 그걸 모르는지 모르겠다"고도 퍼부었다. 그리고 민주당 180석에 압력을 넣어 기어코 야당의 반대 퇴장 속에 단독처리시키고만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송경호 연구원은 "지역화폐 10% 할인 혜택을 보기 위해 그걸 사서 지출은 하지만 그 대신 한정된 가계 수입에 현금, 카드 지출을 그만큼 줄이면 매출 증가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A지역 한 곳만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곳에 들러 10% 할인된 지역화폐를 사서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있지만 현재처럼 전국 모든 지자체가 다 발행해 버리면 소용없다.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비용(2%)과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만 헛돈(deadweight loss)이 되고 만다"는 실증분석 자료를 냈다.　작년 9월에 발행된 이 조세재정 브리프에 기재부도 동의하는 차원에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의 전국 확산을 위한 마중물 차원에서 2020~2022년 3년간 한시적 지원 계획만 있었으므로 이제 지자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특히 올해는 코로나 대응 차원에서 늘렸지만 코로나가 꺾일 내년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의 5차례 재난지원금 가운데 지역화폐로 나간 게 많아 이것마저도 지역화폐 효과로 둔갑돼 부풀려지는 측면이 강했다. 지역화폐가 나오기 전엔 서울-성남-수원 시민들이 서로 들락거리며 소비해 주던 것이 이제 모두 자기네 지역에서만 소비한다면 이건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만다.결국 서로가 이웃 거지만들기(Beggar-thy-neighbour) 게임에 불과하다.중상무역을 하다가 서로 굶어죽게 생겨 자유무역으로 발전하고 고율관세에서 제로 관세율로 갔던 경제 발달사와 똑같은 이치를 기재부는 지역화폐에서도 발견한 것이다. 95% 이상 지자체가 모두 지역화폐를 발행해버리면 판매 효과는 없고 결국 정부 보조금 1조2522억원의 돈을 뿌리는 포퓰리즘만 남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607조 6633억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이승환 기자 자꾸 지역화폐를 늘리자는 것은 결국 국민 혈세로 나가는 정부 지원 규모를 2조원, 3조원으로 늘리자는 또 다른 돈뿌리기의 포퓰리즘밖에 안된다.지역화폐의 더욱더 큰 단점은 재력과 인구 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할인율을 10%보다 높은 15%까지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강남 지역화폐가 할인율이 15%로 가장 높으며 요즘에는 사용처마저 골목상권이 아니라 성형외과, 외국어학원, 입시교습학원 등 고급 소비처로 확산돼 가장 많은 지역화폐가 뿌려지고 있다. 서울지역의 경우 지역화폐 취급 업종의 평균 사용액이 218만원인데 외국어학원 2425만원, 입시교습학원 1330만원으로 집계됐다.지역화폐의 타락이다. 가맹점 수 대비 발행금액도 강남구 452만원, 서울 중구는 118만원에 불과하다. 부익부 빈익빈의 조장이다. 이 같은 지역화폐의 맹점을 보완하는 길은 중기벤처부가 발행하고 전국에서 차별 없이 사용하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일원화하고 가급적 지자체별 지역화폐는 역설적으로 폐지하고 영세상인들은 전기료 할인 같은 다른 방법을 쓰라는 것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올해 3조원에서 내년 3조5000억원으로 증가 추세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한국처럼 지역화폐를 연간 30조원어치나 발행하자는 나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그저 쇠락한 마을 단위로 애교스럽게 관광객을 유인하거나 그런 정도로 존재하다 곧 사라진다.세계 최초의 지역화폐는 1983년 캐나다 밴쿠버 인근 코트니(Courtenay)라는 소도가 광산이 문을 닫아 실업률이 18%까지 치솟으니 '녹색달러'를 창안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는 정도만 있지 성공 스토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후 뉴욕의 이타카(Ithaka), 일본의 아톰(Atom), 영국 브리스톨마이어 파운드, 캐나다의 레츠(Lets)시스템 등이 유명하다.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면 전 세계 120개 지역화폐가 나오는데 한국은 경기지역화폐 이름만 나온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지역화폐는 영국에서 2012년에 시작한 브리스톨마이어로 알려져 있는데 이마저도 금년 3월 발행 중단 위기라는 보도가 떴다.그 어떤 외국의 지역화폐도 커다란 성공 스토리는 없다. 뉴욕의 이타카도 전자상거래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한국이 지역화폐를 21조원어치 발행한 것도 모자라 여당 대통령 후보가 우겨서 2022년에 30조원어치가 발행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해외토픽감이 될 것이다.이것이 자칭 세계 10위권 선진국이라는 한국의 품격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공약, 국토보유세, 지역화폐 트리오가 어우러져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부상한다면 한국이 마침내 베네수엘라 특급행 열차를 타려 한다는 냉소가 퍼질까 걱정스럽다.혹자는 역사 속의 포템킨경제나 무측천의 명당(明堂)을 상상하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