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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J의 첫 출근과 뉴노멀

작성자
금재수
작성일
20-07-11 04:51
조회
1,1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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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태동시킨 청년장애인들이 외쳤던 첫 번째 사회적 요구는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의 제정이었다. 소위 금수저로 태어난 최상층 계급이 아닌 이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민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계를 꾸려갈 수 있으므로. 그들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되었고, 올해로 법률 시행 30년이 되었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노동권은 현재 어떤 상태에 있을까? ‘2019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장애인의 고용률은 34.9%에 불과하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1968년 세계 혁명의 구호 중 하나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였고, 이 68혁명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운동도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범주가 발명되고 정의되었던 맥락을 살펴보면, 장애인의 노동권이란 어떤 면에서 그처럼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에 가까웠다. 1800년대 초중반 서구사회에서 ‘the disable-bodied’라는 범주가 형성될 때, 이는 자본주의적 노동 시스템에서 ‘일할 수 없는 몸’을 가리키는 개념이었고, 이러한 장애인 개념은 현대의 장애 관련 법률에도 그 흔적이 명확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사회보장법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손상으로 인해 실질적인 소득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로 정의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히 일할 수 있는 자는 그 정의상 장애인이 아니므로, ‘장애인의’ 노동권이란 일종의 형용모순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방향에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현재의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이 노동자가 일의 기회를 찾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배타적 공간이 될 때, 그 누구의 노동권도 온전히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이다.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필라델피아 선언’의 첫 번째 원칙이 확인해주듯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경쟁과 선별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은 권리의 장소가 아니므로. 지난 1일부터 서울시가 시행에 들어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는 작은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일자리는 노동은 시민의 권리이므로 공공 영역에서 보장해야 한다는 ‘공공시민노동’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3대 주요 직무는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이고, 최중증 장애인과 탈시설 장애인을 우선적 대상으로 하며,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시설에서 살아온 발달장애인 K도, 흔히 와상장애라 불리는 최중증 뇌병변장애를 지닌 J도 이 일자리의 시행을 통해 인생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평소와 크게 다름없이 노들야학 식구들과 함께 거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외칠 것이고, 노들음악대와 아프리카댄스팀의 일원으로 활동할 것이며, 비장애인 교사와 협업으로 장애인 인권교육도 해나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그들의 그 가치 있는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이제는 인정된다는 점. 아직은 일종의 시범사업에 불과하지만, 이 사회의 모든 K와 J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는 그 누구도 노동의 세계에서 배제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뉴노멀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 장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