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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임, 광화문 현판 '한글'로 바꾸자 주장
"민족의 자긍심인 '훈민정음체' 폰트로 하자"
정부 "한자vs한글 문제 아닌 '고증대로' 원칙"

[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門化光(문화광). 현재 광화문 현판에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이 같은 한자가 적혀 있다. 이는 1865년(고종 2년) 경복궁 중건 당시 쓰인 글씨를 복원한 것이다.

그런데 한글날 574돌을 맞아 광화문 현판을 한자 대신 '한글'로 달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와 시민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광화문 현판에도 21세기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과거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자→한글→한자'…"수난의 광화문 현판, 민족의 자긍심인 '한글'로!"

제574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교체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광화문 현판을 '門化光(문화광)' 대신 훈민정음체 한글 '광화문'으로 내걸어라!"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시민모임)은 8일 광화문 광장 북측 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외쳤다. 이 모임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한글학회 등 한글 관련 단체 80여개, 22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광화문 광장에는 저 문화광(門化光)이라는 한자 현판이 어울리지 않는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제 얼굴이 아니"라면서 "벌써 4번째로 만들고 있는 수난의 광화문 현판만큼은 대한민국의 자긍심이자 자랑인 우리의 문자, 1443년 저 경복궁에서 만들어진 '훈민정음체'로 바꿔 걸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1395년 9월에 창건됐다. 이후 한 차례 화재와 복원을 거쳤지만, 1592년 임진왜란을 겪으며 또다시 전소됐다. 1865년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현판 또한 수차례 바뀌었다. 임진왜란 이전의 현판은 누가, 어떻게 썼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1865년에 중건하면서 현판 글씨는 임태영 훈련대장이 썼다. 그러나 이는 6·25 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됐고, 1968년 복원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광화문'이라 쓴 현판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2005년 정부가 다시 복원 사업에 나서면서 임태영 훈련대장이 쓴 '門化光' 현판을 복원, 2010년 8월에 내걸었다. 다만 이마저도 현판의 재료 등 문제로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새롭게 제작한 현판으로 바뀔 예정이다. 다만 글씨는 임태영 훈련대장의 '門化光'이 그대로 쓰인다.

이에 대해 시민모임은 "현재의 門化光 글씨는 손톱만큼 작고 흐릿한 오래된 사진을 근거로 확대하고 다듬은 것이어서 원형의 가치가 없고 서예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없다"며 "저 한자로 된 글씨는 진짜 글씨가 아니다. 윤곽도 없는 글씨를 디지털 복원으로 얼버무리며 상상으로 그려 넣은 가짜 글씨"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형 글씨가 없다면 지금의 글씨는 (복원이 아닌) '재현'이라고 바로 표현하거나 새로 만드는 방향이 옳은 선택"이라며 "훈민정음체 제안이 훨씬 더 지혜로운 방향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실제 현재의 門化光 글씨는 '고종 중건 시 현판 사진자료(1902년)'를 근거로 디지털 복원한 것이다. 먼 거리에서 찍었기 때문에 확대해도 일부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에 문화재청은 "수차례 검토를 통해 현판 글씨의 생동감·필체감 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유명 서예가들이 합동 참여해 기존 글씨에 최대한 유사하게 복원하도록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글씨는 시대정신, 더 나은 것 필요"…문화재청 "과거 모습대로 복원이 원칙"

제574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교체 촉구 기자회견'에서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 참석자들이 축소 제작한 현판 실물이 공개되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하지만 시민모임은 과거 자료가 새롭게 발굴된다면, 그때 또다시 현판을 바꿀 것이냐고 되묻는다.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복원 원칙이라면, 현재 정부가 정하고 있는 기준 이전의 자료가 나왔을 때 새롭게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2010년 복원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는 이후 심층조사를 통해 '어두운 바탕에 밝은색 글씨' 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자료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소장 '경복궁 영건일기'의 발견 등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재 만들고 있는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 동판'이다.

시민모임은 "이 과정만 보더라도 문화재위원회의 고증과 원형복원이라는 형식적 기준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엉터리 였는가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복궁을 고종 중건 당시로 되돌리겠다는 문화재청의 기본 원칙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경복궁의 모든 문화재를 고종 때로 되돌려야 할 근거나 이유는 충분치 않다"면서 "문화재 특성에 따른 균형 잡힌 복원 원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씨는 건축물과는 성격이 다른 문화재다. 옛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만들자는 뜻"이라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최초의 세종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체 폰트 그 자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유명 서체나 서예가 등의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문화재청은 광화문 현판 글씨 문제는 '한자냐, 한글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자vs한글'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결국은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이 갈등을 최소화 한다는 것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1년 여론조사를 통해 일반 국민들은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어진 공청회 및 토론회에서는 '한자'가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문화재청은 '한자'가 아닌 '사진에 있는대로 복원하는 것'을 택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진행할 때도 각 세대별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했었다"면서 "결국에는 목표가 '문화재 복원'이다보니 한자냐 한글이냐의 논쟁보다는 사진에 있는 그대로 고증을 하는 것이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결정이 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고증대로 한다는 복원 원칙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광화문에 '검은 바탕에 황금빛 글씨'로 門化光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모습은 내년쯤은 돼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추가 연구용역을 진행한 후 내년쯤 유의미한 날에 복원된 광화문 현판이 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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